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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주소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안틀모시길 11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문의

500년 전통의 중요무형문화제 제 75호인 당진시 송악읍 기지시 줄다리기를 비롯하여 국내외 줄다리기 관련 자료 및 각종 체험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

소개

박물관사진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은 국가지정중요 무형문화재 제 75호 기지시줄다리기를 주제로 한 줄다리기 테마박물관 입니다.

지금부터 약500여년 전부터 농경사회에서 시작되어 시장민속과 어촌문화와 결합하여 발전하여 왔고,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줄기차게 전승되어 온 한국의 대표민속인 기지시줄다리기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2011년 4월 개관하였다.

박물관은 지상 3층의 규모로 상설전시와 기획전시실, 체험관 강당과 회의실, 본존회 사무실 및 야외의 실제크기의 줄을 전시해 놓은 줄전시관과 매년 4월 줄다리기는 시연장을 갖추었다.

이곳에서는 기지시줄다리기를 지켜오고 있는 보존회의 전수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매년 4월 축제을 준비하는 축제위원회, 줄다리기의 대중화와 세계화 를 위한 스포츠 줄다리기 등 다양한 단체과 활동중이다.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에서는 유물 및 자료조사와 기록을 통해 기지시줄다리기의 무형유산 기승기반을 구축하고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지역에서 사라 져가는 민속자료를 수집, 보존처리, 관리 및 전시하여 우리의 전통민속문화의 보존과 전승에 힘쓰고 있다.

박물관사진2
박물관사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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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시는 기지시줄다리기가 나타나게 된 지리적 배경, 당진의 농촌, 어촌, 시장의 민속유물과 줄을 제작하는 독특한 도구인 줄틀과 줄제작방식, 당제를 지 내는 국수당의 모형과 70년대 기지시장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으며 지금까지 줄다리기를 보존하고 전승해왔던 보존회와 축제위에대한 내용, 각마을의 농기 와 줄다리기 관련 유물 등 300여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기지시 줄다리기 뿐만 아니라 한국과 세계의 줄다리기 분포와 특징, 올림픽 종목이었던 스포츠 줄다리기에 대한 전시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또한 줄제작체험, 줄꼬기체험, 줄다리기 체험, 달집 소지쓰기 등이 영상과 어우러져 어린이와 학생들의 체험학습의 장으로 각광받고있다.


500년 전통의 기지시 줄다리기

『기지시 줄다리기』는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로서 약 500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행사이며 줄다리기에 사용되는 줄은 길이가 200여 미터, 직경 1미터(머리 부분은 1.8미터), 무개가 약40톤이 되는 거대한 줄입니다.

이 줄은 몸줄이 너무 굵고 무거워 몸줄 좌우에 “곁줄” 이라고 불리는 작은 줄을 수십 개 늘여 줄의 모양이 흡사 지네와 흡사한데 온 마을 사람들이 수상(水上)과 수하(水下)로 나뉘어 이 줄을 다리는 행사인데 수상이 이기면 마을에 액운이 사라지고 수하가 이기면 마을에 풍년이 든다고 합니다.

기지시줄다리기에 관한 전설

『기지시줄다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설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설』과 『지네형국설』 그 것인데 먼저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 선조 초에 지금의 당진 지역인 한나루[牙山灣]가 터져 하룻밤 사이에 17개면(面) 가운데 5개면이 바다에 매몰되고, 남은 지역에는 전염병이 퍼지는 등 재난이 겹쳐 민심이 흉흉하였다. 이때 이곳을 지나던 한 풍수지리학자가 『이곳의 지형이 옥녀가 베틀을 놓고 베를 짜는 형상이기 때문에 윤년마다 지역 주민들이 극진한 정성으로 줄을 당겨야 모든 재난이 예방되고 안정 된다』라고 하였다 한다.
그 때부터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베를 짜서 마전(피륙을 바래는 일)을 하는 데는, 짠 베를 양쪽에서 마주잡고 잡아당겨서 하므로, 줄을 당기는 것은 그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여 처음에는 부녀자들이 줄을 당겼다가 남자들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통 3년을 격(隔)하여 윤년(閏年)에 줄다리기를 하는 것은 베를 짜는데 어느 정도 시일이 걸리는 것이어서 그 동안 베를 짜서 윤달이 든 해에 마전을 하는 것을 상징한 것이라 한다.

두 번째는 『지네 형국설』로서
옛날에 지금의 당진 송악읍 기지시리에 한 선비가 큰 뜻을 품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과거만 보면 낙방하곤 했다.
과거를 볼 때마다 선비가 공부한 문제는 출제되지 않거나 또는 알고 있는 문제라도 과장(科場)에 들어가면 머리에서 새까맣게 지워졌다가 과장(科場)에서 나오면 잊었던 문제가 다시 또렷이 떠오르곤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도 여러 번 실패하다 보니 결국 낙담하여 과거를 포기할까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가 또 과거에 낙방을 하고 귀향하는 길에 국수봉(국사봉)에 올라 망연자실하여 속으로 자기 신세를 한탄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결에 구름이 용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는 하도 놀라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용이 선비에게 놀라지 말라고 하는듯한 몸짓을 하더니 이내 노인으로 변신하여 선비에게
『놀라지 말고 내말을 듣거라 그대가 과거에 거듭 낙방하고 이곳에 윤년마다 재난이 드는 것은 오래 묵은 지네의 심술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선비가 노인에게 방책이 없겠느냐고 묻자, 노인이 말하기를 지금부터 내가 이르는 말을 잘 듣고 그대로 행하면 지네의 횡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일렀다.
『오는 정월 보름날 그대가 이곳에 오면 가지 없는 죽은 나무에 꽃이 피어 있을 것이다. 자정이 지나면 그 꽃에서 예쁜 아가씨가 나올 것인데 그 아가씨가 그대에게 자기 집으로 가자 할 것이다. 그 때 재빠르게 그 꽃에 불을 붙여 그 여자의 입속에 집어넣고 뒤돌아보지 말고 그곳을 피하라.』
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생생했다.
선비는 꿈속에서 노인이 일러준 대로 하기로 마음먹고 정월 보름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정월 대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선비가 국수봉에 올라 살펴보니 과연 가지 없는 죽은 나무에 꽃이 피어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선비는 먼저 꿈에서 노인이 시켰던 대로 하고는 얼른 그곳을 피하였다.
잠시 후에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예쁜 아가씨는 간 곳이 없고 큰 구렁이와 지네가 나타나 뒤엉켜 싸우다가 결국 지네가 죽었다. 선비가 놀라 정신이 혼미한 중에 비몽사몽간에 먼저 꿈에 나타났던 노인이 다시 나타나 하는 말이
『심술을 부리던 지네는 죽었지만 이 고장은 지형이 지네형국이기 때문에 횡액(橫厄)을 막기 위해서는 윤달(閏月)이 드는 해 마다 지네모양의 밧줄을 만들어 줄다리기를 하여 지네의 허리를 늘려놓고, 지네의 혈을 뭇 사람들이 밟아 지네의 기를 꺾어 주어야 심술을 부리지 못하여 재난이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꿈에서 노인이 선비에게 알려준 대로 하니 재난이 없는 살기 좋은 고장이 되었다 하며 이때부터 줄다리기 행사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한편 마을 이름인 "기지시"라는 명칭은 현재의 송악읍 기지시리(機池市里)가 예전에 베틀을 뜻하는 '틀(機)'자와 길쌈을 하기 위해서는 물이 있어야 함으로 연못의 '못(池)'자가 합쳐서 '틀못(機池)'이라 하였고 과거 이곳에는 저자거리(市場)가 형성되어 있었기에 이를 합쳐 "틀못시", "틀모시" 또는 '틀무시" 라고도 하였는데 이를 한자어로 기록하면서 "기지시(機池市)"가 되었고 입으로 말을 할 때는 '틀못시' ⇒ '틀모시·틀무시'로 되었다.

당진『기지시 줄다리기』는 현재는 매년 4월 『기지시줄다리기 민속축제』를 개최하여 우리나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하나 되는 마당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tour


1.줄다리는 모습

2.줄나가는 모습

3.거리 농악

4.전통방식의 줄꼬기 모습 


이용안내

박물관은 지상 3층의 규모로 상설전시, 기획전시실, 체험관 강당, 회의실, 본존회 사무실 및 야외 전시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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