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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

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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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
솔뫼성지
주소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솔뫼로 132 솔뫼성지
문의

솔뫼는 '소나무가 우거진 산'이라는 뜻으로, 당진시 우강면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곳으로 그의 생가와 기념관이 함께 마련되어 있어 성지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소개

솔숲을 거닐다.

제법 나이 먹었음 직 한 소나무들이 동산에 가득 숲을 이룬 곳 솔뫼. 솔숲을 거닐던 중 자세가 바르지 않고 휘어 자란 소나무들의 모습에서 문득 느낀 애처로움은 증조부, 조부, 부친 그리고 자신까지 4대가 순교한 인물을 기억하기 때문이리라.

1785년 을사박해를 시작으로 100년여의 세월동안 박해를 받아온 천주교 역사 중 병오박해 때 순교한 김대건 신부(1822-1846). 신심(信心) 만 놓는다면 해방 될 수 있는 온갖 핍박에 아랑곳없이 스스로 고난의 길을 가고자 했던 인물이다. 부귀영화에 아랑곳없이 가진 것을 나누며, 신자를 돕고 의지하며, 고난의 세월을 딛고자했던 성인. 그에게 있어서 박해는 이미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참된 진리를 얻기 위해 감내할 수 있는 극복의 대상이었음을 생각한다.

천주교 103인 성인 중 하나로 추앙받는 그의 생가 뒷동산을 거닐자니 예의 소나무 숲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소나무 숲의 가장자리 김대건 신부의 동상 뒤의 하얀 탑은 성모의 모습을 형상화한 탑으로 신자를 돌보고 있음을 상징한다. 믿기에 의지하고 사랑하기에 믿음을 준 성자와 성모의 상을 함께 바라보자니 사람은 믿음으로 살고 있음을 문득 깨닫게 된다.


tour


1.생가 뒤 소나무 숲의 김대건 신부 동상과 성모탑. 성모를 형상화 한 탑이 자연스럽게 성모마리아 상을 연상하게 한다..

2.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김대건 신부 동상 권역

3.굵직한 소나무들이 성지의 숲을 이룬다. 성지 순례 시 아껴 뒀다가 순례 막바지 길에 오르면 더없이 좋은 곳이다. 


박해로 점철된 초기 천주교

초창기 한국 천주교회사는 순탄치 않았다. 한 마디로 박해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질곡의 세월을 겪게 된다. 1785년 을사박해를 시작으로 100년여의 세월동안 박해를 받게 되면서 많은 사람이 순교하게 된다.

박해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첫째는 천주교가 제사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미풍양속을 해치는 그릇된 사교라는 이유였고, 두 번째는 당파싸움과 연결된 정치적인 이유였다. 당시 로마 교황청에서는 한국의 전통 제사를 미신으로 간주하여 엄격히 금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죽은 이의 혼령(귀신)을 부르는 지방(紙榜)을 써 붙이는 의식과 혼령이 제사 음식을 먹고 간다는 생각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사 문제가 발생하자 남인들로 이루어진 파벌(시파, 時派)을 적대시하던 벽파(僻派)에서 천주교를 박해하면서 남인들을 대거 숙청하려고 했다. 1801년, 조정에서는 천주교 금지교서를 발표하고 전국적으로 박해를 시작하여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하기에 이르며 대표적인 박해 사건으로 4대박해가 있다.
'4대 박해'는 신유박해를 비롯해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 등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4대 박해' 중에서도 신유박해와 병인박해 가 가장 규모가 크고 신자들의 희생도 컸다. 병오박해는 최초의 한국 인 사제였던 김대건 신부의 체포로 그 파장이 컸다. 그러나 이 박해 외에도 을사박해, 신해박해, 정해박해, 을해박해 등 전국 각지에서 1876년 개항 때까지 숱한 박해가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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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지의 김대건 신부 기념관 내부. 김대건 신부의 생애와 순교를 그림으로 그려 놓아 순례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2.기념관 내부는 한국 가톨릭 역사 사료가 잘 정리되어 있다. 


김대건 신부의 고향 솔뫼성지

당진시 우강면 솔뫼로 132에 위치하고 있는 솔뫼성지는 사적 제529호로 지정된 곳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가 출생한 곳으로 그의 생가와 동상, 기념관이 있는 곳이다. 국내 제1의 가톨릭 성지로 명성 자자 한 이곳은 1984년 5월 한국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내한한 교황요한바오로 2세로부터 그가 성인으로 시성된 후 전세계 카톨릭 교회의 공경의 대상이 됨에 따라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적으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순교 100주년을 맞은 1946년 성역화 사업이 시작되어 기념비와 동상 등이 건립된 이곳. 담으로 둘러싸인 성지의 입구를 들어서면 왼쪽에 김대건 신부가 나고 자란 생가터에 다다른다. 단아한 모습의 한옥과 함께 그의 상이 마련된 생가터는 그의 증조부 김진후, 조부 김한현, 부친 김제준, 그리고 자신까지 4대가 살았던 곳으로 4대가 순교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는 면천 군수로 있을 때, 내포의 사도 이존창으로 부터 전교를 받은 후 벼슬도 버린 채 신앙생활에 전념함으로써 박해의 시련을 피해갈 수 없었다. 홍주, 전주, 공주 등의 감옥에 갇혔다가 1814년 해미에서 76세로 일생을 마감했다. 이렇게 증조부가 10년간의 옥고 끝에 순교하자 그는 할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하여 성장하게 된다. 1836년 16세 때 신학생으로 뽑힌 그는 마카오로 건너가 신학을 공부하여 1845년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그 해 10월 귀국한 그는 '은이' 마을에 공소를 차려 용인 일대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고, 귀국한지 불과 1년이 지나기도 전인 1846년 6월에 체포되어 그 해 9월 새남터에서 순교하기에 이른다.

생가터를 지나 성지의 남쪽 끝은 김대건 신부의 일대기와 천주교 박해역사를 둘러볼 수 있는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그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의 활동과 업적, 체포와 순교 4대 박해, 한국교회사 등에 관한 자료와 함께 희귀 성물도 전시되고 있어서 천주교의 생활문화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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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대건 신부의 생가터 전경이다. 앞마당의 신부 상과 재현 된 생가가 자리 잡고 있다.

2.생가의 대청 중앙에 김대건 신부의 초상이 걸려 있다. 이곳은 순례객들의 발길과 시선이 오래 머무르는 곳이다.

3.생가 되란의 장독대. 전통가옥과 장독대는 썩 어울리는 우리 고유의 멋이다.

4.성지에 마련된 김대건 신부 기념관. 오른쪽 건물은 기념관과 관리사무실이 있고 왼쪽의 건물은 성당의 기능을 하고 있다. 

교통안내

-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솔뫼로 132
- 서해안고속도로 당진나들목→ 국도32→ 합덕→ 솔뫼성지

주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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