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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리 유적전경

당진의 선사시대,
고대사 재조명

<당진 고대 성산리 발굴유적>
청동기, 한성백제때 귀중한 사료 무더기 발굴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시행중인 당진 석문국가산업단지 조성 지역에서는 다양한 석기를 전문적으로 제작했던 집단이 거주한 대규모의 청동기시대 집단 생활유적이 발굴되었다.

또한 산성, 집단 주거지, 고분군으로 구성된 백제 한성기의 유적도 동시에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집단 생활유적은 산업단지 배후의 주거단지가 조성되는 고대면 성산리 일원의 낮은 구릉지대에 자리하며, 청동기시대 마을이 폐기된 이후 동일 구릉지대에 백제 한성기 집단 주거지와 산성이 반복적으로 점유된 경우에 해당한다.

청동기시대 집단 생활유적에서는 90여기의 주거지가 조사되었는데, 일부 주거지의내부 퇴적토에서는 굴·조개·소라 등이 섞인 조개더미가 버려진 채로 확인되었다.

이는 당시 거주민들이 인근 해안가에서 어패류를 채취하여 집단 생활유적에서 소비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료이다.

한편 다수의 주거지에서는 석검, 석도, 석촉, 석부 등 다양한 석기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가공되지 않은 원석과 석기제작 당시에 받침으로 사용된 모릇돌 및 제작과정에서 배출된 파편, 그리고 가공 도중의 미완성품들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러한 자료들은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식생활과 생산활동에 관련된것으로 당진 성산리 유적의 청동기시대 집단 생활유적에서 주목해야할 고고학적 성과들이다.

동일 구릉지대에 시대를 달리하여 조성된 백제 한성기의 유적은 군사 방어시설인 산성과 성곽 내외부에 조성된 집단 생활유적과 무덤군으로 구성되었다.

산성은 산 정상부를 안쪽에 두고 외곽을 흙과 돌을 사용하여 둥글게 돌린 형태로 둘레는 약 316m, 내부 면적은 4,483㎡ 정도이다. 동시에 산성 안쪽 평지에서는 동시기대의 주거지가 확인되었고, 남쪽 성벽 외부의 구릉 사면부 일대에서는 40여기가 군집되어 있다.

주거지 내부에서는 점토와 돌로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부뚜막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시루, 동이, 굽다리접시, 네 개의 다리가 달린접시, 뚜껑 및 꺾쇠, 쇠도끼, 쇠낫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마을에서 남동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소규모의 고분군도 확인되었다. 당진 성산리 백제시대의 유적은 군사(산성)·생활(집터)·분묘(고분)유적을 모두 갖춘 복합유적에 해당하며, 당시 마을의 범위는 성산리 일대를 모두 포함한 광범위한지역에 해당된다.

성산리 산성은 판축기법으로 쌓은 한성백제기의 성으로 삼족토기와 사족토기가 출토되어 한성백제기 당진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다.

한편 성산리 유적에서는 고려시대,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유적도 다수 발굴돼 이곳에서 선사시대부터 집단적인 생활을 해 왔음을 알 수 있다앞으로 자세한 마을의 조성시기와 산성과의 관련성은 조사자료분석을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

당진지역에서 이러한 큰 집단생활유적이 확인된 것은 그동안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당진의 지역사,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한성 백제시대의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해명하는데 있어서 커다란 성과이며 당진의 선사시대 및 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역사 연구에도 영향을 미쳐 활발하고 다각적인 연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이며, 향후 지역박물관 건립시 중요한 전시적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것으로 전망된다

성산리 유적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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